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리누스 미헬스 (문단 편집) == 지도자 경력 == ||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external/24.media.tumblr.com/tumblr_m2fvqxy23s1rtys3mo1_500.jpg|width=100%]]}}} || || {{{#000000 '''그의 페르소나 [[요한 크루이프]]와 함께''' }}} || 몇몇 아마추어팀의 감독을 맡다가 1965년 친정팀 [[AFC 아약스]]의 사령탑을 맡게 된다. 그가 감독을 맡은 6시즌 동안 아약스는 자신의 애제자이자 페르소나인 [[요한 크루이프]]와 함께 [[토탈 풋볼]]을 완성하여 축구의 진보를 이끌어 리그 3연패(1966~1968)를 포함 4번의 리그 우승을 차지한 데 이어 1970-71 시즌에는 [[유러피언컵]][* [[UEFA 챔피언스 리그]]의 전신] 챔피언에 오르며 전성기를 맞이한다.[* 아약스의 트레블은 후임인 [[슈테판 코바치]]가 이뤘다.] 이로써 미헬스는 당시 [[펠레]]가 활약한 [[산투스 FC|산투스]]와 브라질 대표팀에 비견될 만한 네덜란드 축구의 성취를 이끌었다. 이후 [[FC 바르셀로나|바르셀로나]]의 감독으로 자리를 옮겨 1971~1975년, 1976~1978년까지 6시즌 동안 바르사를 이끌며 [[라리가]] 우승 1회와 [[코파 델 레이]] 우승 1회에 그쳤지만 현재의 바르사 축구의 뿌리를 형성하는 데 공헌을 했다. 많은 트로피 없이도 바르사 이사회가 미헬스를 신임했던 것은 비로소 팀이 원하는 아름다운 축구를 구현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었다. 이때 확립해 낸 '전체 선수단이 함께 공을 가지고 공격하는' 축구 스타일은 크루이프 감독 시절과 [[펩 과르디올라]] 체제를 거쳐 완성되었다. 첫 시즌인 1971-72 시즌은 무관으로 끝냈지만 바르사는 당시 17경기 연속 무패라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. 게다가 당시 [[엘 클라시코]]의 성적이 미헬스의 입지를 공고히 했다. 미헬스 부임 전인 1971년 2월 14일 바르사는 홈에서 레알 마드리드에 0-1로 패했다. 그러나 미헬스가 감독 자리에 앉은 이후 라 리가에서 치러진 엘 클라시코에서 바르사는 6연속 무패를 달렸고, 1974년 2월 17일 마드리드 원정에선 역사에 남을 5-0 대승을 거두며 바르사 팬들의 지지를 얻으며 그해 라리가 우승 트로피를 손에 거머쥐었다. 그러나 1974-75 시즌에는 마드리드 원정에선 0-1 패배, 홈에서는 0-0 무승부를 기록해 더 이상 면죄부를 얻지 못하고 4년 만에 사임했다. [[1974 FIFA 월드컵 서독|1974 서독 월드컵]]때는 [[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|네덜란드 대표팀]]을 이끌었다. 당대 최고의 스타 [[요한 크루이프]]를 앞세운 네덜란드는 토탈 풋볼의 위력을 보여주며 승승장구 하였으나 결승에서 서독에게 1-2로 역전패하여 준우승에 머물렀다. 월드컵 종료 후 아약스를 거쳐 다시 바르셀로나로 건너가게 되고 1978년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자신의 커리어에 추가한다. 이번엔 미국으로 건너가서 로스엔젤레스 아즈텍스의 감독을 잠시 맡은 후, 1980년 이번에는 [[분데스리가]]의 [[FC 쾰른|쾰른]]의 감독을 맡는다. 여기서 1981-82 시즌 분데스리가 준우승, 1982-83 시즌 [[DFB-포칼]] 우승을 차지한다. ||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external/www.vi.nl/cid146535_MichelsVI01_1024_580x310.jpg|width=100%]]}}} || || {{{#000000 '''14년전 월드컵 결승전에서 패배를 안겨줬던 '[[올림피아슈타디온 뮌헨|{{{#000 뮌헨 올림피아슈타디온}}}]]'에서 네덜란드를 정상으로 이끌다.'''}}} || [[UEFA 유로 1988|유로 1988]]에서는 다시 한 번 네덜란드 대표팀의 감독을 맡게 된다. 당시 네덜란드 대표팀은 [[마르코 반 바스텐]], [[루드 굴리트]], [[프랑크 레이카르트]]의 이른바 [[오렌지 삼총사]]가 버티고 있는 유럽 최강팀이었다. 조별리그에서 소련에게 일격을 당해 패하기는 하였으나 결승에서 소련을 다시 만나 2-0으로 설욕하며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.[* 이것이 현재까지 네덜란드 최초이자 최후의 메이저 대회 우승이다.] 이후 [[바이어 04 레버쿠젠]]의 감독을 맡고 다시 한 번 대표팀 감독을 맡기도 하였으나 큰 족적은 없었고 1992년 대표팀 감독에서 사임하며 그의 커리어는 끝을 맺는다. 감독 은퇴 이후에도 네덜란드 대표팀과 UEFA에 여러 컨설팅을 해주다가 2005년 3월 3일에 심장 수술의 후유증으로 벨기에 알스트에 있는 한 병원에서 숨을 거두었다. [[차범근]]이 레버쿠젠 시절 미헬스의 지도를 받았다. 미헬스의 축구철학과 지도방식에 큰 감명을 받은 차범근은 지금도 가장 존경하는 스승으로 미헬스를 꼽는다. 선수 은퇴 이후에도 문하에서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고 한다. [[차두리]]에게는 리누스 '''할아버지'''라고 불리었다고 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